2013년 10월 1일 화요일

흄의 철퇴



 데이비드 흄은 아주 젊은 시절부터 빛을 발한 천재이다. 그는 절대적인 진리를 깨닫고 싶어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30살 즈음의 어린 나이에 너무나 파괴적인 결론을 발견해버렸다. 그 결과 그는 긴 세월동안 회의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한 때 싸이월드에서 유행하던 꿈을 잃은 축구천재 카카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그 뒤로 많은 철학자들이 흄의 회의주의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결국 흄 이후로 순수한 경험론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1. 흄의 파괴적인 결론은 아주 간단하고 명확하다. 'A는 B의 원인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이것이 논리학에서의 어떤 귀결(歸結)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것이라 여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프다.'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이것이 사실인 까닭은 밥을 굶으면 배가 고픈 결과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같은 원인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역시 지금껏 유사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순환논증에 빠져버리고, 인과관계란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얻는 귀납적 지식에 철퇴를 가한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고 지식을 쌓는 과정은 인과관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계속해서 A가 B와 연관될 때, A는 B의 원인이다 라고 결론짓는다. 이것은 모두 귀납적인 것이다.  나는 사탕을 먹으면 단 것을 알고, 잠은 안자면 피곤한 것을 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도 안다. 그런데 흄에 의하면 이 모든 생각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흄은 절망해서 '이성과 감각에 대한 회의주의적인 의문은, 근본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니 차라리 '부주의와 방심'을 택해서 회의주의를 벗어나야만 한다. 이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을 그냥 믿어버리고, 대충 즐겁게 살라는 말이다.


2. 흄은 말한다. '미래가 과거와 유사하다는 가정은, 어떤 논증 위에 세울 수는 없으며, 오직 습관에서 비롯될 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을 가만히 보면, 흄이 이야기하는 습관 역시도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다. 경험이 습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믿게되는 심리적 경향도 그 근거는 오로지 경험에 있는데, 흄이 이것은 받아들이는 듯이 보이는 것은 묘하다.

 흄은 절대적인 진리를 너무나 강렬히 추구했기 때문에, 자기의 결론에 크게 좌절했다. 하지만 귀납법을 통해서 필연성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해도,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면 숨통이 트이게 된다. 많은 실례가 반복될 경우에 개연성은 점차 확실성에 가까워진다. 물론 그럼에도 결코 필연성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연성을 인정하면, 이를 바탕으로 추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개연성은 분명히 경험을 벗어나 있어야 한다. 개연성이 경험에 근거한 원리가 되면, 개연성에 입각한 귀납의 원리는 순환논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한 경험론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흄의 철퇴를 피할 수 없다.


3. 생각해보면 인과관계라는 개념은 우리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에 근거한다. 우리는 욕구가 생기면, 반응하고, 욕구가 해소되는 일련의 본능적인 과정을 밟는다. 결국 우리 인간은 원인과 결과를 늘 정의하고, 짝지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인간의 의식구조 안에서만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인과관계와 그에 근거한 귀납법이 없으면, 거의 모든 과학이 성립하지 못한다. 물론 우리는 흔히들 F=ma라는 것이 대단한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공식이 실험결과와 일치했기에 우리가 믿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학자나 통계학자들은 자주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 둘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흄의 관점으로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과관계란 강한 상관관계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100만번 실험해서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100만 1번째에 이르러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이와 같은 걸 일일이 따지고 사는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분석과 같이, 극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흄의 철퇴를 늘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p.s : 사진의 요리는 무슨 베네딕트라는데 잘 기억이 안나고, 장소는 청담동 '퀸즈파크'. 된장들의 성지라고 모 양이 소개하고 데려갔던 가게다. 정말 재미있다. 된장들의 성지라니.. 맛이고 뭐고 잘 모르겠는데, 분위기좋고 사람구경하는 재미는 확실하다.

댓글 2개:

익명 :

개연성이 경험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아해되지 않네요 ㅠ

Spiritz :

이건 답변드릴 수 있겠네요. 개연성의 근거가 경험적 사례라면 순환논증이 된다는 소리에요. 예를 들어, '지금껏 100번 봤는데 A면 늘 B야. 따라서 A면 B일 가능성이 크다고 둘을 연관지을 수 있어. 이걸 개연성이라고 해.'라고 한다면, 이 개연성에 대해서 누군가 '그 개연성의 근거는 뭐야?'라고 물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우리의 생득된 감각이거든요. 그리고 경험적으로 보면 잘 들어맞고요. 개연성의 근거에 대해서 우리가 답을 하고자 할 때 경험적 사례를 든다면 그건 순환논증이 될 겁니다. 결국 그냥 '믿어야만' 할 거에요. 순수한 경험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건 그런 소리입니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네요~ 답변이 되셨기를!